
[제목] 꿈에서 네냐-야플리아 신입생 돼본 후기 푼다
작성자 : 비야
네냐-야플리아 신입생 돼본 후기 푼다
회귀나 빙의, 환생에 대해서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었다. 어른의 인지능력 그대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거나, 환상의 세계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상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테니까. 가끔 관련된 소재의 작품들을 접할 때, 회귀/빙의/환생을 한 후 빠르게 적응하는 주인공을 보며 엥... 말이 되냐?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반대로 생판 모르는 세계에 떨어져서 헤매고 힘들어하는 주인공을 보며 어우... 나는 그냥 하던거나 잘 해야겠다... 생각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하늘이 도우사 나에게 맞는? 곳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첨언하자면, 좀 심하게 너무 익숙한 곳에 들어와 버렸다.
"여기.... 너무 익숙한데..."
꼬꼬마시절 모뎀 인터넷으로 즐겼던 포리프와 쌈짓돈 털어서 했던 테일즈위버가 생각나는 이 주변 배경... 안고니나 어쩌고 커튼이 깔려있고 티치엘 친척분이 관리하시는 포도원이 있을 것이며... 여하간 최고의 마법학교...
"설마 네냐플이냐..."
로글랑탱 파이 사세요~ 사세요~ 사세요~ 뒤에서 파이가게의 에코가 울려퍼졌다. 나는 열심히 주위를 살펴보고 나의 외양을 뜯어보았다. 현실 파악이 빠를수록 이세계에서 발뻗고 지내기 편해진다는 것은 수많은 이용권들이 내게 알려준 지혜였다. 그런데 내가 입고 있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Lv. 1의 쪼렙 교복이었다. 이, 이거 당장 학교로 달려가야 할 각인데. 식빵이라도 물고 급하게 달려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살아남아라 네냐플이 된 이 상황에서 식은땀만 좍좍 흘리고 있었다. 아까 익숙하다고 떵떵거렸지만 사실 도트 배경이 갑자기 3D가 되니 방향을 가늠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있었으니,
"신입이야?"
침착하고, 가라앉았지만 정확한 청동의 목소리.
"네... 네...!!"
"쭉 가다가 이상한 조각상이 보이면 왼쪽으로 꺾어."
그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알다마다? 나는 네, 보리스 오빠! 라고 외치려다 입을 막았다. 오빠라는 호칭이 맞는 것인가? 보리스는 나랑 처음 만났을 땐 또래였지만 지금은 나보다 훨씬 어리다. 아니, 그런데 잘생기면 다 오빠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막상 앞에 두고 있으니 나의 사회적인 염치가...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눈치껏 딱 맞는 호칭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밝디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보리스 선배!"
"어...? 어."
조금 더 생각했더라면 쟤 어떻게 초면에 내 이름을 알지? 인생의 반을 도망자로 산 나를 왜 알아보는 건데 (경계) 하던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들어보세요. 방금 네냐플에 떨어져서 보리스 진네만이 곤란에 빠진 나를 도와줬는데 어떻게 이성을 잡냐고요. 그는 룬의 아이들 1부 윈터러(겨울을 지새는 자)의 주인공이라고요; 그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라고요!
(꿈에서)네냐-야플리아 신입생 돼본 후기 푼다
나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지금은 입학식을 한 지 얼마 안 된 초반이다. 그리고 지금은 점심시간에 가까운 시간이다. 전자는 나랑 같은 색의 넥타이를 한 애들이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눈빛으로 돌아다니는 걸 꽤 보아서이고, 후자는 방금 갈색 머리의 단발에 되게 탐정처럼 생긴 남자가 어딘가를 향해 확신을 다한 발걸음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해서, 이건 꿈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방금 뺨을 꼬집어봤는데 안 아프고, 손을 펜으로 찔러 봤는데 그냥 통과하더라. 나는 아우렐리아가 아니고 강령술 알못이기 때문에 이건 불가능한 일이고 찐으로 꿈이다. 그 김에 나는 좀 막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혹시 모르니까 스토리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하에.
진짜 오래간만에 받아보는 식판에 가리비 수프와 래디쉬 샐러드, 블랙베리 소스의 스테이크가 놓여져 나는 만족의 한숨을 내쉬었다.(이게 얼마만에 받아보는 영양소 모두 챙긴 급식이지?) 그리고 지하철 2호선을 타면서 발달시킨 '저 자리는 내 거야' 패시브를 발동시켜 그들, 그러니까 도토리빌라즈의 옆라인에 앉기에 성공했다. 약간 눈치 없는 신입생을 연기하며 상급생에게 저기, 혹시 그 사건의 주인공들이 자주 앉는 자리가 있나요? 하고 물색해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작년에 로글랑탱 파이 던졌다가 큰일날뻔한 애들 말이야?"
아마도 엑스트라일 선배는 단번에 알아듣더니 저어기. 하고 손가락질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선배. 앞으로 읽을 때 선배랑 비슷한 외양이 나오면 꼭 신경써서 두 번 읽을게요. 나는 나만의 명당에 앉아서 너무 빨리 먹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천천히 포크와 숟가락을 가져갔다. 제일 먼저 귀에 들린 건, 루시안 칼츠의 목소리였다.
"방학때 다들 뭘 할 거야?"
"연구할 게 잔뜩이라 학교에 남을 것 같아-"
이건 티치엘 같고.
"조슈아 너 또 바늘구멍만한 목구멍을 가진 거위처럼 굴고 있는 거냐?"
이건 막시민이고...
"그럼 조슈아가 거위야?"
이건 루시안이고...
"취소. 세상에서 가장 안 어울리는 동물과 비벼버렸다. 정확하게 녀석은 꽁무늬가 붙어버린 공작에 가깝다."
"막군... 새로운 폭언인 거야?"
"막시민 선배님. 흥미로운 묘사입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합니다."
차례대로 막시민 조슈아 루시안이다.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큭큭 웃고 말았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그 사람이 오지 않았다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식사시간에 늦어버린 보리스 진네만 같은 사람이 아니었으면. 정말 나와, 도토리빌라즈만 알 수 있는 정도의 쾅 소리가 났다. 몰래 웃던 내가 눈을 치켜드니 그곳엔 익숙한 청동색 머리의 남자가 있다.
"네 정체는 뭐야."
아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네 정체는 이 세계 외부의... '참관인'이라고?"
그렇다니까요. 나는 재갈 대신 문 빵을 끄덕거렸다.
"외부의 추적자치고는 꽤 기상천외한 변명이네."
조슈아가 말했다. 자기는 영매사 겸 시스콘 겸 데모닉인 주제에 상식적으로 구네... 속으로 궁시렁거렸지만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 듯했다.
"아니 그런데 추적자가 저렇게 허술해? 저건 차라리 조슈아의 팬클럽에 가까운 눈빛... 윽!"
"루시안, 네 말은 가끔 너무 정확해서 문제지만... 일단 가만히 있어 봐."
"...그래, 네가 말한 대로, 우리를 관찰했다면 너만 아는 이야기가 있을 거야."
하고 나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나는 빵을 퉤 하고 뱉고는 궁시렁거렸다.
"그래! 너는 코츠볼드의 모든 풀과 나무껍질 맛을 알고! 젠장 비극적 낭만주의자 연산은 끝났고! 형이란 그런 거고!"
루시안과 막시민과 조슈아와 보리스의 얼굴이 각자 시간차를 두고 심각해졌다. 아니 근데, 이거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추적 마법으로 본인들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니까... 마법이 안 통하는 데에서, 지금 실질적인 위협(실제로 본 윈터러는 개무서웠다) 을 가지고 있는 보리스를 단박에 설득하려면...
"...에피비오노."
보리스의 미간이 눈치채일정도로 구겨졌다.
"네가 인형에 익숙했던 이유 아니야?"
이미 '보리스 선배'라는 호칭은 까먹은지 오래였다.
"그리고 엔디미온. 네 주사위의 원래 주인이지?"
보리스가 유의미한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아는 거지?"
그 후로 진행된 일은 진짜 tmi였다. 나는 사실 니들은 소설속 주인공인데... 어쩌고 하는 말을 다 참고, 내가 독자라는 말도 숨겼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너희들에겐 진짜고, 나에게는 진짜였으면 좋겠는 정말 사랑하는 세계니까. 그리고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는 마당에 쓸데없는 고민거리를 주긴 싫었다. 애들아 이건 다 꿈이다. 그냥 그러려니 해. 니들 인생에 어이없는 일이 이거 하나 뿐이었냐? 점심먹다가 갑자기 메타존재와 마주치는 것 정도는 그냥 애교로 봐주면 안되냐? 라는 생각을 잘 포장해서 최대한 연륜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다보니까... 이렇게 됐다... 니들처럼... 그리고 어릴때부터 해보고싶었던 일을 한다. 즉 보리스의 머리를 한번 툭툭 쓰다듬었다. 너랑 나는 예전엔 동갑이었는데 이제 내가 먼저 커서... 이제 내가 누나거든? 꼬우면 너도 현실로 나와. 보리스는 약간 당황스러운 눈빛을 하다가, 내 표정을 보고 바로 눈치챈다.
"돌아... 가는 거야?"
거야 보리스 너도 엔디미온이랑 계속 숨바꼭질하고 싶었을 거잖아. 형이 살아있던 시절의 환상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을 거잖아. 하지만 나도 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 이런 말을 참고 나는 말했다.
"블러디드... 아직 연재중이야..."
"블러디드?"
당연히 얘들은 아직은 모를 것이다. 그런데 나 그거 다음편 봐야 돼. 나는 웃음을 참으며, 하나하나에게 인사했다. 루시안 칼츠, 보리스 진네만, 조슈아 폰 아르님, 막시민 리프크네, 티치엘 쥬스피앙. 몸 건강히 잘 있어라.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동그란 것을 파삭, 깨뜨렸다. 기억의 알을 실제로 써 볼 수 있을 줄이야. 아마 내가 기억에 대한 '룬의 아이들' 속 아티팩트로 기억하고 있기에 나타난 것이겠지. 이 세계는 내가 사랑해서 기억하는 것들밖에 없다. 나 사실 여기에 조금은 더 있고 싶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삶에서 잊고 있었대도, 관련해서 이야기할 기회만 생기면 저 그거 진짜 좋아해요! 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 있더라. 그런 건 살면서 점점 줄어들기 쉬워서 가지고 있다면 소중히 여겨야 되더라고. 그게 나에게는 너네들이야.
있잖아 나 니들이 너무 좋다. 그러니까 애들아, 잘 살아. 나는 너희의 삶을 끝까지 참관할게.
이번 주말은 룬아나 재탕할까... 하면서 나는 일어났다. 룬의 아이들... 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고 하면 너무너무 거창하지만, 다시 읽다 보면 나는 이 소설의 이 캐릭터가 처한 행동과 생각에서 감명을 받고 이런 동감을 했었구나 하는 추억이 든다. 그리고 그 때의 깨달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너무 명확하다. 인생에 총 몇 퍼센트일지는 모르겠지만, 엄연히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다. 신세졌습니다. 여러모로요. 흠... 뭐부터 읽을까... 책장 앞에 웅크리고 있었더니 동생이 물어보았다. 언니, 왜 똑같은 책을 몇 세트나 가지고 있는 거야? 동생이 가르키는 곳엔 구판 신판 애장판 박스세트가 놓여 있었다. 아니 다 다르거든? 이건 양장판이고 이건 초판이고.... 아니 그러니까 제목이 똑같잖아; 왜 똑같은 책을 계속 사냐고. 마 니 룬의 아이들 중독이다... 나는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초판은 초판이고 개정판은 문장도 다르고 또 박스세트 팔면서 맥주컵도 부록으로 줘서 그래... 라는 걸로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긴 말은 줄이고 그냥 간단하게 답변했다. 재밌어서. 진짜 나도 환장하겠다. 왜 20년을 읽었는데 재밌냐...
꿈에서 네냐-야플리아 신입생 돼본 후기 푼다 끝